패션  Montrez Vos Gambettes!
ZOH
2008년 여름,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 땅을 밟았던 시절. 금세 스트리트 포토에서나 보던  멋진 친구들을 사귀고, 예정된 7개월이 지나고 나면 원어민 뺨치게 불어를 구사할거라는 허황된 꿈을 꾸던 나는 첫 한달을 매일 눈물로 보냈다. 한국 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도 하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기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리 등록해둔 기숙사에 가서 방을 지정받고 자잘한 행정처리를 하는 것부터가 멘붕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선배의 초대로 가게 된 친구들과의 첫 파티에서 인사 이외의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어 독일아이에게 벙어리 같다는 굴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쏟아지는 껄렁껄렁한 남자들의 희롱. 심지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엉덩이를 때리고 간 적도 있다. 동양인을 보기 힘든 지방의 작은 도시도 아닌데 어째서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는 걸까. 친구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몰랐다.
 

프랑스에서는 짧은 팬츠 아래로 드러난 맨 다리를 깊은 데콜테 사이로 보이는 가슴보다 더 센슈얼하게 본다는 것을. 여름이었고, 한국에선 짧은 축에도 못끼는 평범한 쇼츠였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긴 진을 입고 있었고 하의가 짧은 경우에는 레깅스 혹은 스타킹이라도 신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말 더운 한여름에는 맨다리로 다니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극도로 짧은 핫팬츠나 무릎 위로 훌쩍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은 여성을 보기는 힘들다. 짙은 스모키의 동양인 여자애-당시에는 나름대로 세 보이고 싶어서 항상 눈주변을 새까맣게 하고 다녔다-가 쇼츠 아래로 통통한 허벅지를 내놓고 다녔으니 할 일 없는 희롱꾼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그렇다고 그들의 희롱이 정당한 것은 결코 아니며, 긴 옷을 입으면  좀 덜할 뿐이지 동양인 여성을 성가시게 구는 남자들은 항상 있다.)


하지만 내 다리는 ‘길다’ ‘늘씬하다’ 따위의 형용사들과는 거리가 멀다. 긴 바지를 입으면 뭔가 소세지 같은  답답한 모양이 되고, 어중간한 길이의 스커트는 종아리 가장 굵은 부분을 가로질러 닭다리 셰이프를 완성한다. 수년간의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내린 결론은 무릎 위 10cm 스커트와 차라리 다리를 드러내는 쇼츠. 여기에 맨다리가 불가능하다면 파리지엔들의 솔루션을 따라 레깅스와 스타킹을 애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서 부딪히게 되는 또다른 문제. 정말이지 (특히 패션 관련) 공산품이 우리나라만큼 싸고 질 좋은 곳이 흔치 않다. 기본 반투명 검정 스타킹이 보통 6-7유로에 달하는데 한번 빨고 나면 여기 저기 올이 나가고, 뜯기고..내 세탁 기술이 신통치 않아서 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타킹 값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프랑스에 거주할 계획이 있는 여성들은 한국에서 스타킹과 레깅스를 넉넉히 준비해 올 것을 추천한다. 혹 안그래도 챙길 것이 많은데 스타킹까지 한 짐 짊어지고 오기가 곤란하다면, 또 매일 신는 검정 스타킹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매달 13.50유로의 가격에 검정 스타킹 하나와 컬러풀하거나 패턴이 들어간 스타킹 하나를 보내주는 Gambette box(gambette는 구어로 다리를 뜻한다.)를 추천한다. 우선 사도사도 부족한 검정 스타킹과 무채색 위주인 파리지엔들의 스타일에 활기를 더해 줄 컬러 스타킹이라는 구성이 만족스럽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마트에서 사는 스타킹보다 질기고 튼튼하므로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매달 박스안에 함께 담겨져 오는 예쁜 사진과 글귀는 하얗기만 한 벽을 장식할 수 있는 쏠쏠한 보너스. 아쉽게도 현재는 프랑스 내에서만 배송이 가능하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한 때는 패션 에디터를 꿈꿨던 나에게 당시 편집장이었던 카린 로이펠드를 비롯한 파리 보그 에디터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심플 올블랙 룩에 흠집하나 없는 완벽한 블랙타이즈로 감싼 그녀들의 미끈한 다리는 화려하게 드레스업 한 이탈리아 보그의 에디터들과 대조를 이루며 파리지엔 시크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녀들처럼 적나라한 노출 없이 슬릭한 라인만 드러내는 것, 충분히 섹시하지만 파리 거리의 희롱꾼들이 보내는 천박한 눈길은 피해갈 수 있는 스타일링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ZOH
프랑스와 애증의 관계를 5년째 이어가고 있는 애주가. 한국에서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프랑스에서 불문학과 연극을 공부하고 있다. 몸매도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아서 시즌별로 쏟아져 나오는 눈부신 아이템들을 사모으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시크한 빠리지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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